
필리핀 빠끌라(바클라)란? 게이·트랜스젠더와 다른 필리핀 성소수자 문화

필리핀에서 “바클라(Bakla)”- 보통 빠끌라 라고 발음합니다- 는 한국어의 ‘게이’와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닙니다. 필리핀의 성별·성정체성 문화를 이해할 때 꽤 중요한 개념입니다.


전통적으로 bakla는 태어날 때 남성으로 분류되었지만 여성적인 말투·행동·외모나 사회적 역할을 보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타갈로그어입니다. 남성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지만, 단순히 성적 지향만을 뜻하는 gay보다 성별 표현(gender expression)까지 포함하는 필리핀 특유의 문화적 범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학술적으로도 bakla = gay라고 1:1로 번역하기 어렵다고 설명됩니다.


바클라 = 트랜스젠더도 아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헷갈립니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있다고 하면,
A: 남자로 살고 남성적인 스타일인데 남자를 좋아함
→ gay일 수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bakla라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B: 남성으로 태어났고 남자를 좋아하며 여성적인 말투·옷차림·행동을 함
→ 필리핀에서는 전형적으로 bakla라고 불려온 유형입니다.
C: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함
→ transgender woman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 일상에서는 B와 C를 모두 그냥 bakla라고 부르는 경우가 상당히 있어서 서로 다른 개념이 뒤섞입니다. 이 때문에 LGBT 단체나 연구자들은 transgender woman을 무조건 bakla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필리핀에서는 바클라가 굉장히 눈에 잘 띕니다
한국 사람이 필리핀에 처음 와서 놀라는 부분 중 하나죠.
미용실, 메이크업, 패션, 쇼핑몰, 식당, 콜센터, 엔터테인먼트 업계 등 일상생활에서 여성적인 게이 남성이나 트랜스 여성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Vice Ganda처럼 성소수자 연예인이 대중문화에서 큰 영향력을 갖기도 하고, beki라는 표현이나 이른바 beki language / swardspeak 같은 독특한 LGBT 언어문화도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필리핀은 LGBT에 엄청 개방적인 나라구나.”
라는 인상을 받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절반만 맞습니다.
사회적으로 바클라가 일상 속에서 눈에 잘 띄고 어느 정도 친숙한 존재인 것과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가족이나 직장, 계층에 따라 여전히 조롱이나 차별, 고정관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즉 가시성은 매우 높은데 사회적 수용은 복합적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실제로 “Bakla!”라고 말할 때
상황에 따라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친한 친구끼리
“Bakla!”
라고 장난스럽게 부르는 것은 한국어로 치면 친근한 별명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본인이 스스로
“Bakla ako.”
“나 바클라야.”
라고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하고요.
반면 모르는 사람에게 조롱하는 말투로 bakla라고 하면 당연히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이 처음 만난 사람에게 외모만 보고 Are you bakla?라고 묻는 것은 상당히 무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애·성문화 관점에서 바클라를 보면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전통적인 bakla가 좋아하는 상대가 반드시 자신처럼 gay identity를 가진 남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straight 또는 masculine이라고 인식하는 남성과 bakla가 관계를 맺는 문화적 패턴도 존재해 왔습니다.

그래서 서구식으로 단순히
gay ↔ gay
라는 구조만 가지고 필리핀의 관계를 해석하면 이해가 안 되는 상황들이 생깁니다. 바로 이 부분이 필리핀 바클라 문화와 한국의 게이 문화가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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